201
아직은
가지 끝으로 흐르는
바람결이 차갑다.
먼 수평선 너머로 일상을
뛰어 넘은
구름들이, 비상을 채비하고
우리들이
일찌기 놓쳐버린, 한 마리의
바닷새가, 다시
돌아와 훈풍에 이는 풍랑처럼
둥지를 틀고 있다.
202
세월이
흐르고, 세월 따라 흐르던
해안선이
몇 번인가 바뀌면서
서로를
닮아 간 저들은 누구인가......
유한 속에
무한한 연륜을 그려낸,
203
겨울,
차가운 바람 끝을 따라, 덕수궁 돌담길
어디쯤에
아직도 남아 있는, 좁은 정동길을 걸으며,
신문명의 발상지이며
아관파천의 슬픈 역사를 기억나게 하는
그 길을 잠시 거닐었다.
알 수 없는
바람결이 가슴을 스치며, 잃어버린
한 줄기 낭만을 조금은
되 살려 보고 싶었다. 오뇌에 찬
역사의 흔적이 주저리 주저리 서린 그길에서.......
204
누구든지
단 하나의 촛불을 밝히려고
폭풍우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심지를 돋구어 가며, 꺼뜨릴 수 없는
생명의 빛으로
날마다 날마다 거듭 태어난다.
새벽은 어둠을 사루면서....
205
우리들의
고향에는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아침에 활짝 피어나
정오가 되면 눈을 스르르 감는,
연민에 찬 그녀를
우리는 차마 잊지 못해,
낮아진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채
가슴 앓이를 하고 있다,
지금도.......
206
겨울 바다의
가녀린
원경(遠景)은 대답하지 않을 뿐,
말이 없음으로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바다는
영원할 뿐 말이 없노라고......
그 잔잔한
물결 위로 신운(神雲)이 떠도는,
207
섣달 그믐,
수면의 낙차를 키우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낙차만큼
멀어져간 작년(昨年)을
기억하려고
동막 멀리 지는
해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208
소금 기둥이 된
그녀를 생각했다.
한 줄기 빛이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그 회심(懷心)의 일촉즉발을
기억하는 이마다
빛은 단순히 빛으로만 존재하지 아니했다.
한 줄기 빛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209
모든
시련의 아픔을 불태워 버려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모든
시련의 아픔들을 불태우기 위하여......
시련이 있는 곳에
아픔을 사루는 불꽃도 반드시 있다.
이 것이 믿음인 것을........
210
난 꽃이
활짝 피어나던 날, 그 난향에
취해, 가슴 저리면서도
꽃잎을 어루만져 줄
기약 하나 예비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온 종일 서성여야 했던
그날을, 우리는 호곡하노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