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고독한
광야의 모래 바람을
견디며 살아 온
선인장의 일생은, 어쩌면
루마니아에서
만난 집시와도 같은, 신열로
가득했던
생애를 돌아다 보며, 잔해 앞에
서 보는 그 느낌........
172
시인
김춘수는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을
생각하며, 다늅강의 물결이
남한강 어디 쯤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키워 주었다.
이제 우리는 도처에서
별 시스럼 없이
만나는 그런 작은 별에 살고 있기에........
173
팔부 능선
너머로 흰눈은 정지 된채
고착된
역사는 흐를 줄을 몰랐다.
1953년, 그 해
겨울은 너무 길었다.
갑자기 지나가는 기억의 눈보라여.......
174
새 한 마리 날고 있다.
수평선이
파도를 타며, 노을 빛은 물장구치고,
우리들은 잊혀진
꽃 한송이 꺾어 들고,
심연속으로 낮아져 가는 능선 위에 서 있다
겨울은
바람을 몰고......
175
누군가
저 설원을 밞고 올 사람이
기다려지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한 편의 동요처럼
맑고 깨끗한 선율이 스며나고.......
선율은
오랫동안 멈추질 않고,
176
1958년
동부 능선 적근산 아래
숯굴이 있었다.
병사는 눈 구럭 속에서
숯포를 지고
한 발 앞으로, 이보 후퇴를
거듭하며,
속절없는 병영을 시작하고,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된, 적근산을
바라보며, 38선의 봄을 노래했다.
봄은
우리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177
동면 속에
깨어 있는, 유일한 호수 옥정호,
깨어 있는 이만이
생명의 빛을
찾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을 적시는
호수, 옥정호,
그 날 새벽에도 깨어 있었다.
178
섬으로
시집간 딸을 기다리며,
밤마다
꿈을 꾸는 어머니 마음씨 같은
다대포의
파노라마........
179
소금을
전매하던 시절, 소금창고는
황금의 창고,
해안 포구 곳곳에 숨어 있던
우리들의
애환의 숨결, 쇠잔해 가는 자화상이여........
아마도 우리가 소금으로서의
맛을 잃은 까닭은 아닐까........
180
가을은
가고, 겨울은 아직도,숨가쁜
자전거 등판에
얹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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