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미풍이 일던날
꽃은 피고, 봄은 벌써 우리 곁에
와 있었다.
그러면서도 봄이 기다려지는
까닭은, 봄은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둘레에서, 닫혔던
생명의 문을 두드려 주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302
한국의 봄은
연분홍 빛 가슴으로 다가 온다.
봄은
연분홍 빛 꿈을 먹고
자나라나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날,
진달래는
또 다시 연분홍 빛으로 피어나리니......
303
사랑한다는
고뇌하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를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실로
슬퍼할 수 있는 이만이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사랑은 절대명령일 뿐이다.
304
봄눈이 녹아
내를 적시고, 우리들의 내면을 적시며
흐르는
저 풍요로움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연주로도 갈음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천착(穿鑿)이며
영혼에 깃드는
비둘기 울음소리, 구구구구.......
305
누가 있어
우리 전래의 춤사위를 저들에게
가르쳐 주었을까......
하나의
강열한 메타포로 서 있는,
저 반열 위로
난데 없는 바람이 스쳐가고
우리들은
백학 머리에 박힌 붉은 점 하나를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306
티 없는
아이들의 동화속 이야기처럼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 적설이 되어 쌓여오고
원색의 주인공들은
자작나무 숲길을 달려,
환상을 심고 있다.......
307
러시아어의
끄라스나야는 붉은 색을 가르치는
말이다. 붉은 색은
사회주의 색갈이 아니라,
러시아인의 정서를 물들여온 전통의
기호인 것이다.
역사는 때때로 칼라를 왜곡하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흰 바탕 위에 붉은 점은, 겨울 요정
리비나 열매처럼 극치감에 차고........
308
들꽃들의
황량한 삶은, 처절한만큼
아름답고,
아침 이슬마저도 외람스러워
쏟아내는, 저 광야의
태양은,
그 이름마저도 없어, 찬란하다.
가시덤풀 사이에서
오늘도 태양은 솟아오른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도 거기 있었다.
309
삶은 치열한 만큼 아름답고
삶은 가로막는 장애의 크기만큼 위대하다.
삶이 곧 생명인 까닭이다.
생명이 하나인 것처럼 삶도 단 한 번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서서 울지라도
더는 울지 말아야한다. 누구나 단 하나의 길을 갈뿐이다.
먼데서 들리는 천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310
해빙기의 아침,
천년을 울던 학울음 소리 멈추고,
한 나절을 기다려
산뻑꾸기 울다 가더니,
내 관절의 마디마다 이는 남풍에
봄눈은 녹아
내를 이루고, 강둑을 넘어 범람하려나.......
저 황홀한
봄의 탄성이 봇물되어 터지는 소리,
마른 갈대마저도 귀를 열고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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