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
무언가
상념에 찬 가을 잔디를 깎으며
성경 속의 말씀처럼
잔잔한 파동이 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또 한 해를 가슴에 품고
조용히 비껴선 자라마다
가을 햇살은
다사로워도, 먼데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처럼, 예초기(刈草機)의 소음만은
상처처럼 아련하고야........
572
저 한 폭의
드라마는, 하늘을 스크린 삼고
멈춰 선 요단강 물에
마음을 닦는, 내 영혼의 파노라마여........
갈길 몰라
방황할 지라도, 두려워 하지 아니함은
그분께서
나의 비치 파라솔을 들고 계심이라.........
573
저 무한으로 이어지는
생명은
바다 밑 마른길을 돌아서, 이적의 광야를 지나
영원한 복락의 땅, 가나안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리니,
빛의 은총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 주여,
그 이름 영원하옵소서.........
574
사물은
이데아(idea)의 그림자라고
플라톤은 말했습니다.
진정
반영(反映)은 본질처럼 하늘에 있고,
땅에 선 자작나무 숲은
그 그림자만 같습니다.
우리들의
의식(意識) 안에 붙잡혀 있는
골프장 풍경이.......
575
긴 파장으로
울려퍼지는 숲 속의 저, 바람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없어도
듣는 이들은
듣나니, 길고도 먼 볼가강 그 너머로,
은혜처럼 번져 오는
그 날의 숲 바람소리.........
긴 파장으로 울려퍼지는 저, 숲 바람 소리
누구나 다 들을 수 없어도,
576
거대한
대 자연을 지켜내려는, 저 겸양한 삽질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지어 주신이의 의사(意思)를 타진하듯이
조금씩 헤쳐보는
저 겸양을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지는 흔들리고
풍랑의 바다에 뜬 나뭇잎처럼
자연의 한 부분이 된 우리도 흔들리고 있다.
577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시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또 기도하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그날의 그여인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시리니......
578
그 오랜
형극의 세월을, 무엇으로 다 감당하고
이제, 청초한
한 폭의 무지개로 서 있느냐......
위의(威儀)에 찬
폭염의 여름을 지나, 계절의 입구에서
우뚝 선 너를
왜 우리는 잊지 못하는 것일까.......
청사(靑史)는
시련 끝에서 꽃을 피나니,
579
화려한
꽃잎은 물위에 뜨고, 이름 모를
거대한 물수레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들릴 때, 우리는
인생을 시작한다.
그동안 우리 안에 젊음으로 가두워 두었던
물수레에서 떨어지던
그 굉음의 낙차 (落差)소리를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이마다
인생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물위에 떠 있는 화려한 꽃잎이 아니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소리를 들으며 사는 영혼일 뿐이니.....
그래서 영어의 soul을
사람이라 일컫는 것이 아니겠는가.
580
우리는
누구나 시민이란 이름으로 살라가는
장돌뱅이가 아니던가......
끝 없는
연민, 그리고 끝 없은 정의(情誼)으로
살아가는 착한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 속에서 피어 난 메밀꽃은,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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