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오, 주님
황량한 들에 서 있을지라도
노을이 곱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내면에서
반짝이는
영롱한 눈 빛을 노래하게 하심은
님이 주시는
우리들의 형상이오니, 지금부터
영원하시리이다.
나의 형상으로 오신 주님이시여..........
532
긴 로선 위를
밤새껏 달려 가던, 뻬쩨르부르크행 야간열차,
그 해 겨울
미지의 겨울을 달려 가던
칠흑과 점등, 때로는 멀리서 흔들리는
기적소리를 들으며
온 밤을 지새워 가던 그 길을
지금, 다시
잃어버린 낭만이란 이름의 시름을
기억하듯이,
기억하듯이 달리던 기찻길을.........
533
버릴 수 없는
금단의 추억만큼이나,
우리들의 추억을 되 살려낸
궁평리의
바닷바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534
그 험준한
태초를 실어 나르는 강은
지금도 흐르는가......
눈감고
불러보는 이름, 콜로라도,
달빛으로 흐르는 강, 콜로라도여........
535
일모로
기우는 우리들의 귀항(歸港),
언제나
쓸쓸했다. 풍성한 만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귀항은 조금은
쓸쓸했다.
쓸쓸해서 아름다운 노을에 물든
우리들의 귀항이여.....
536
해면을
누비던 구름이 걷히면, 바다는
한 폭의 원경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고, 해안선을
따라 열린
사람들의 장벽 너머에는
태양 볕이 서러운 parasol의 향연이
감추어 둔 정조처럼 빛나고........
537
꿈은
뒤집어 봐도, 현실이
아니고
꿈인 것처럼, 뒤집어 봐도 보이는
우리들의
조그만 고뇌들이여......
538
마당을
가득 채우던, 가을잠자리는
양철 지붕에서
말리던 고추빛갈처럼
익어가고,
멈춰 설 수 없는 상념들이 하늘을
떠돌던, 우리들의
유년이 있었다. 조금전까지 아득하기만 한
우리들의 유년이, 어제처럼
문득 살아난다.
오늘이 입추란다
539
바다가
보고 싶다. 땅 끝 어디쯤에
홀로 살아서
숨 쉬는 그런 바다가 보고 싶다.
계절이 지나고
땅거미가 몰려 와도
깊은 상념으로 살아 있는
해안선을 따라, 고독한 자아로 남아 있는
그런 바다가 보고 싶다.
그런 바다가........
540
뻬쩨르브르크
여름 궁전을 향유한 당신의 모습이
신선하구려.
인간의 의지와 욕망의 표상인
분수는,
어느 제왕의 꿈처럼 아름다울지라도,
진정한 꿈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내면에서
끊임 없이 뿜어내는, 불러주신이의
음성일지니,
여름 궁전 로비 난간에 앉아
오뇌하는 당신의
모습에 주목하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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