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교각 사이로
보이는 해안선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창선대교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이겠지요.
이몽룡이 그리워
늘어진 광한루의 춘향이 그네줄처럼,
그렇게, 남해를 흔드는
봄 바람은 휘황하겠지요.
오랜 침묵은
전설처럼 깨어지고........
272
베란다에
무심히 놓아 두었던, 키큰 양란이
꽃이 피던날,
암석 위에 걸쳐 서 있는
조선 소나무가 그리워, 갑자기
이동해 간 장소, 꽃지,
아련한 난분(蘭盆) 사이로
짧은 겨울해는
긴 여운을 남기며 지고 있었다.
난향은 그곳에서
붉게 타오르고......
273
바다 끝
모래섬 너머로 지는 태양은, 태양이
아니고, 한 줄기
감흥이었다. 우리들 가슴에서
이글거리던, 불멸의
불꽃은,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태양인 것을 거듭 우리는 알고 있기에......
274
등이 따뜻해지니까
시를 쓸 수 없다던, 어느 시인의
외침이, 유독
아름다운 가시처럼 느껴집니다.
가시를 두려워하면
그 가시에 찔려 죽을 것이나,
가시를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은 영원히 살리니,
사랑하는 자마다
가시는 인간 승리의 면류관되리.......
275
야외 공연장
빈 자리에는 눈이 쌓이고, 엽서 한 장
남겨두고 갈
빈 공간마저 없어 보이는
저, 질서의 머리 맡으로, 까츄사의
깐깐한 기침소리가 들려오고.......
276
평화는 단조롭고 조용할 뿐
말이 없다.
아버지도, 어린 아들도
말이 없다.
그들은 다만 평화를 향유하기 위해
침묵으로 공연장을 빠져 나가고,
침묵의 공간 만큼
평화는 누적되어 갈 것을 믿고 있다.
277
다만
자작나무 숲에는
미지의
신비가 숨어 있어,
유혹처럼
숲을 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우리를 감싸고......
278
새들이
태양에 부딪쳐 바다로 떨어졌다.
선주(船主)의 아내는
앞치마에 태양을 받아 담으려고
바다로 뛰어들고,
아직은 점화되지 않은 등대를
바라보며, 고올대를 향해
날려보낸 박지성의 슛은, 그대로
유효한채, 공중을 날고 있었다.
태양은
쇼맨십도 있는
축구 선수만 같더라고, 누가 말했을까.......
279
오늘은 승창, 치경, 병인과 대전도시철로
맨 끝에 있는 지족산 산바람 소리에
마음을 씻으며,
경칩을
알리는 마지막 겨울 햇살에 등을 떠밀려, 그렇게
가는 겨울을 친구삼고 돌아왔습니다.
그 곳, 정감어린
자작나무 숲에는 온종일
눈이 쌓이고 향수로 기우는 어깨위로
이름 모를 바람이 스치우고.......
280
천상의
솜 이불을 지상에 펼쳐놓은 듯이
그렇게 눈구럭에 태평히
앉아, 절규하는 소녀야. 일어나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으시는 그분이 다 들으셨나니......
누구든지
절규하고 싶거들랑, 입을 크게 벌려
할 수만 있다면
일생일대에 가장 입을 크게 벌려, 절규하라
일어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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